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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기전 군대 얘기는 항상 재밌다. 뭔가 재미 없으면서도 재밌다. 내가 군대얘기를 좋아하는건 트라우마에 따른 반응이라고 생각을 한다. 수감생활을 하다 온 사람들이 끊임없이 그곳 얘기를 하는 것 처럼, 끊임없이 군대에서 있었던 얘기를 반복하고 공유함으로써, 이렇게 힘들고 이상한 일들은 비단 나에게만 있는게 아니며, 우리 모두가 공유하기때문에,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슬퍼할 필요가 없다, 라는 집단 자기 위로라고 생각한다. 나의 주위 모두가 경험했기에 많은 부조리나 비효율은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가 옳은 일을 하다 왔다, 라는 그런 집단 최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군대얘기를 끊임없이 함으로써 ‘봐라 나는 이런 힘든 일을 했다, 사회야 나에게 보상을 해주지 않겠니, 나에게 칭찬을 해주지 않겠니, 나의 ..
대학 수업 한국 대학도 마찬가지겠지만, 미국 대학도 강사마다 수업들이 천차만별이다. 이책의 모든 내용들 처럼, 내가 경험한 것들에 극한에서 쓰겠다. 일리노이는 굉장히 큰 학교였기 때문에 많은 교양과목 (특히 공대 기초과학 - 물리, 화학, 수학등)들은 굉장히 큰 강의실에서 했다. 2-300명쯤이 들어갈수 있는 강의실에서 교수가 일주일에 세시간정도 강의를 하고, 일주일에 두시간정도 조교가 진행하는 discussion section (모여서 문제를 풀거나 강의 내용을 복습하는 수업) 이나, 물리/화학 같은 경우에는 실험을 했다. 한국 대학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짜잘한(?) 할일들이 많기때문에, 모든 수업마다 뭐가 언제 마감인지 잘 정리를 하고 있어야 한다. 인터넷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거라 믿었지만 결과는..
비움 이게 무슨 스님같은 소리냐 하겠지만, 난 사실 파계승정도라고 생각해도 될정도로 불교에 관심이 많다. 스티브 잡스는 매일 같은 옷을 입는걸로 유명했다. 우리는 살면서 본업(?) 말고 다른 많은 것들을 해야하는데, 의,식,주 가 대표적인 예이다. 잡스같은 경우는 `의’ 부분을 최소화 시킨 케이스다. 나 또한 살면서 너무 생각할게 많다는걸 느꼈다. 나의 램이 부족하고 하드웨어가 딸려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할게 많다보면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워 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항상 같은 음식을 먹는다. 매주마다 장을볼때 같은 물품들을 구매해서, 일요일에 일주일치 식량을 다 준비하고, 매일 냉장고에서 꺼내서 전자렌지에 돌린후 먹는다. 난 먹는걸 좋아하지만, 예전부터 큰 욕심은 없었다. 욕심이 없었다기 보다..
커뮤니티 컬리지 미국내에서는 커뮤니티 컬리지라는게 존재한다. 커뮤니티 컬리지라는건 미국 내에서 커뮤니티 (주변 동네..?)를 위해 지어진 작은 2년제 학교인데, 주로 학비가 싸고, 대학 (유니버시티)보다는 교육 환경이 안좋은 편이다. 공부를 못해서 어쩔수 없이 가게된 학생도 있고, 학비가 없어서 가게된 학생도 있고, 뒤늦게 학교를 가고싶어 가게되는 다양한 학생들이 존재한다.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 커뮤니티 컬리지 라는 게 생각보다 큰 전략적 자산이라고 생각해서 이다. 이번에 연구소에 여름에 온 인턴중에는, 커뮤티니 컬리지에서 2년을 마치고 유씨 버클리로 3학년 입학하는 친구가 있었다. 또한 학교 위치마다 근처 ''명문'' (주로 일류는 아니다, 주립대학 정도) 대학들이랑 협약같은게 있는 경우도 있다. 캘리..
대학도착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SAT학원을 같이 다녔던 사람이랑 (형.. 잘지내?) 같이 부랴부랴 버스를 탔다. 시카고 공항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2시간 반정도 걸린다. 그렇게 짐을 싣고, 흥분이 가라앉을때쯤 눈이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땐 30분 뒤였고, 버스에는 사람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 복도에도 사람들이 가방을 머리에 이고 탔었다. 대규모 피난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였다. 주위 얘기를 들어보니 버스 회사에서 자주 오버북킹 (자리보다 많은 좌석을 판매하는것)을 하고, 주로 이렇게 된다고 했다. 버스 회사가 거진 독점식으로 운영하는거라 불편해도 이용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빈 공간보다 인간이 차지하는 공간이 많은 버스는 학교로 달렸다. 흥분과 두려움이 섞인 상태에서 지금이 몇..
틴더 틴더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앱인데 (미국에서는 더더욱), 굉장히 간단하게 설명하면 나의 근처에 있는 이성(이나 동성, 본인의 선호에 따라)을 보여주고, 마음에 들면 오른쪽, 마음에 안들면 왼쪽으로 사진을 넘긴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음에 들어하면 대화를 할수 있게 되고, 그 이후로는 알아서 해결(?) 하는 방식이다. 예전에 한국에서 유행했던 채팅앱들과 나름 유사하고, 쓰임새도 그와 비슷하다. 모든 도구들이 그렇든 사람마다 틴더를 쓰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이유중 하나는 빠르고 쉬운 관계(?)를 찾기 위해서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틴더를 그렇게 이해하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이 앱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호기심으로 시작을 했지만, 그런 ..
아버지 나의 청소년기는 아버지의 인정을 향한 끊임없는 갈망이였다. 어렸을적 나는 크게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딱히 잘하는것도 없었고, 그냥 평타(?)를 치는 아들이였던 것 같다.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기쁨보다 실망을 많이 드리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사고를 쳤을때는 정말 절망적이였다. 대학교도 그닥 좋은곳을 간게 아니라 항상 가족모임에서 눈치를 봐야 했다. 그렇게 나는 항상 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마땅한 결과를 못내는 나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이 실망감과 분노(?)는 나에게 좋은 원동력이 되었고 나는 아버지의 인정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렇게 좋은 결과들이 나와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아들, 난 니가 자랑스럽다’ 라고 들었을때는 어지러울정도로 기분이..
어머니 예전에 서울대학교에 페미니즘 토크 콘서트를 보러 간 적이 있다. 큰 강의실에서 한시간 반정도 이뤄졌는데, 패널리스트들이 주장한 것은 `난 우리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였다. 페미니즘에 문외한 이였기때문에 난 패널리스트들이 굉장히 못됐다(?) 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에게 이런말을 할수가 있지라고 생각했고, 솔직히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넘겨 짚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난 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역할은 정말 부당한 직책이였다. 우리 사회는 모성애라는 집단 최면으로 여성들에게 자신의 꿈과 열정을 `접어두고’ 주도하는 역할이 아닌 보조하는 역할로 밀어낸다. 집안일은 쉬운일이 아니며, 일에비해 받는 보수는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