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학생활

대학도착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SAT학원을 같이 다녔던 사람이랑 (형.. 잘지내?) 같이 부랴부랴 버스를 탔다. 시카고 공항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2시간 반정도 걸린다. 그렇게 짐을 싣고, 흥분이 가라앉을때쯤 눈이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땐 30분 뒤였고, 버스에는 사람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 복도에도 사람들이 가방을 머리에 이고 탔었다. 대규모 피난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였다. 주위 얘기를 들어보니 버스 회사에서 자주 오버북킹 (자리보다 많은 좌석을 판매하는것)을 하고, 주로 이렇게 된다고 했다. 버스 회사가 거진 독점식으로 운영하는거라 불편해도 이용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빈 공간보다 인간이 차지하는 공간이 많은 버스는 학교로 달렸다. 흥분과 두려움이 섞인 상태에서 지금이 몇시고 내가 인식하는 시간이 언제인지도 모른채 버스는 달렸다. 창밖을 보니 옥수수밭이였다. 일리노이에 간다고 했을때 사람들이 옥수수를 항상 얘기했는데, 정말 창밖에는 몇시간동안 옥수수뿐이였다.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와 주위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지쳐 잠든 사람들이 대부분 이였지만 왠지 그들의 표정에는 기대감에 들떠있는 미소가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지금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눈을 멀뚱멀뚱 뜨고 앞을 주시했다.

버스가 멈췄다. 이민가방 두개와 책가방을 들고 내렸다. 고등학교때처럼 주위 사람들은 분주하게 자기 갈 길을 찾아갔다. 나는 또 여기서 멍하니 서있었다. 같이 간 형이랑 기숙사 사무실을 찾아 (그때가 새벽 1시쯤이였는데도 사람이 있었다.) 열쇠를 받고, 각자의 기숙사에 찾아갔다. 그 형은 학교에 오기 전 인터넷에서 만난 두명의 한국 사람들과 같은 방을 쓰기로 했고, 나 또한 인터넷에서 만난 낯선이와 방을 쓰기로 했다. 페이스북에서 룸메이트를 구한다고 포스팅을 했을때 본인이 한국인을 잘 안다며 (이때 한번 생각했어야 했다), 본인이 시카고 근처에 살기때문에 학교를 잘 안다며 룸메이트를 하자고 했다. 나는 `뭐 도움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이민가방 두개를 질질 끌고 2층이였던 나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새벽에도 밝게 비춰진 복도끝에, 나의 방이 있었다. 247번. 묵직해보이는 나무문에는 내 이름이 그려진 스티커가 있었고, 난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니 5평만한 방에, 침대 두개와 책상두개가 좌우로 나눠진 형태의 방이 나왔다. 오른쪽에는 룸메이트가 이미 와서인지 짐들이 놓여져 있었다. 하지만 방에는 아무도 없었고, 피곤한 나는 신경쓸 겨를도 없이 짐들을 내팽겨치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는 굉장히 싸구려같은 느낌의 트윈 침대였지만, 난 드디어 도착했다는, 그래도 혼자 한가지 일을 해냈다는 안도감에 이내 잠들었다. 

 

아니 잠들뻔했다. 잠이 반쯤 들어 더이상 방의 낯섬이, 방의 작음이 느껴지지 않을때쯤, 열쇠를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서 인사를 해야하나 생각했지만 귀찮아서 자는 척을했다. 이후 룸메이트가 인사불성이 될만큼 술이되어 (문을 열자 술냄새가 났다…!) 휘청휘청대며 들어왔다. 나의 존재를 인식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대로 자신의 침대로 쓰러졌다. 취한 사람을 본 경험이 많이 없는 나는 `저러다 죽는거 아닌가’ 불안했지만 얼핏 `기숙사 룸메이트가 죽으면 그 학기 성적은 올비플러스로 마치게 된다’ 라는 루머가 떠올랐다. 아직 얼굴도 제대로 안본 사람이였기에 난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잤다. 

 

아침이 되었는지 잠이 깼고, 일어나보니 자고있던 룸메이트가 없었다. 진짜 죽은건가 덜컥 겁이 났지만 죽었으면 혼자 걸어 나갈리 없고, 누군가 실어나르러 왔으면 날 깨웠을것이기에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보니 같이 온 형이 오늘 할일이 많다고 나오라고 했다. 그렇게 어딘지도 모른채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 건물을 나갔다. 나가고 보니 나의 기숙사 바로 앞이 식당이였고 내 기숙사는 6개의 기숙사들이 모여있는 곳중 하나였다. 



미국 대학을 가면 할일이 많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왠만한 학교들은 체크리스트를 보내주는데, 이메일을 잘 주시하고 있다가 체크리스트대로 척척해내면 된다. 해야할 일의 예는

  1. 학생 신분증 만들기 (건물 들어갈때, 버스탈때 등 필요함)

  2. 예방접종

  3. 수업 등록 (생각보다 처음에는 어렵다)

  4. 학비 내기 (은행 계좌 만들어서 인터넷 등록 등)

등이 있다. 처음에 엄청 많아서 그렇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딱히 누가 말해준다 해서 쉬워질 일들도 아니기에 적지 않는다. 

 

여기서 일리노이가 좋았던 점은 두가지다. 첫번째는 학교가 워낙 커서 이런 인프라가 잘 되어있다. 이런 일들을 도와주는 인프라도 잘 되어있고, 버스시설도 굉장히 훌룡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본인이 귀찮아서 안하지 않는한 할수있다. 두번째는 한국사람들이 도와주고 싶어서 안달이다. 이게 이상하게 들릴수 있겠지만, 교회나 성당에서 정착하는걸 도와주겠다고 주변 마트로 라이드도 해주고, 소규모 그룹을 만들어 설명회 비슷한것도 하고 어쨋던 뭘 많이 한다. 나는 고등학교때부터 교회를 굉장히 경계하던 편이라 딱히 도움을 받지는 않았는데, 뭘 강요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그냥 굉장히 착한 사람들인 것 같다. 그래서 이용해먹고 잠수타기도 되게 미안한 사람들인 것 같다.

 

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굉장히 부러웠다.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솔직히 말해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나를 엄청 좋아라 한다’’는 사실을 백프로 믿고 있다면, 정말 단 1의 의심도 하지않고 그렇다고 믿는다면, 그만큼 세상에서 행복한 일이 어디있겠나. 물론 앞의 큰 전재가 붙어 있지만, 만약 무슨 이유때문인지 신이 있고, 나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아들이자 자신(이 개념은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을 하찮은 인간들에게 모욕적이게 사형당하게 했다고 믿는다면, 굉장히 기분이 좋을 것 같다. 물론 난 5년간의 주입식 교육에도 불구하고 단 한순간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 따뜻한 신이 있기에는 세상은 너무 더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죄를 짓고 싶었고 (술을 먹는다던가, 거짓말을 한다던가), 신이 있으면 겁이 많은 나로써는 굉장히 애매해지기 때문에, 신이 없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를 나가서 하루의 반정도를 보낸다는거는 굉장히 큰 낭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의 그 전재를 전적으로 믿는다면, 뭐든 못할까, 생각한다. 

 

어쨋든 신입생으로 학교를 처음 가게 되면 모르는 것도 많고 얼을 많이 타게 되지만, 그만큼 모든 일이 다 새롭고 재밌다. 지금은 왜 이렇게 됐지 싶을 정도로 그때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좋아했다. 작은 기숙사 방 안에 있으면 숨이 막힐정도로 답답하고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파티를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 나의 첫 일주일은 시차적응도 되지 않아 혼란스러웠지만, 무더운 캠퍼스내 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걸을 때면, 나는 뭐든지 될수 있고, 이곳은 정말 행복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수업에 대한 막연한 생각도 없고, 모든게 웰컴이고 이츠오케이 였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열려있었으며, 모두가 미래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면서도,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만큼 열심히 놀고, 돌아다녔다. 

 

한국은 대학생이 되는 나이에 술을 마실수 있는 나이가 되지만, 미국은 만 21세가 되야 술을 살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입생들은 (만 18세-19세) 주로 술을 살수가 없다. 그래서 많이들 파티를 간다. 파티를 가면 주로 fraternity에서 하는 무료 파티거나, 5불정도를 내면 마시고싶으만큼 마실수 있는 컵을 주는 하우스 파티를 간다. 누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을 가면 술을 마시고 취하는게 `대학생활’ 이라는 엿같은 문화가 박혀 있다. 왜 공부하고 세상을 배우러간 대학에서 그런 추태를 부려야하는지 아직도 나는 잘 이해할수 없지만, 그당시에는 나도 나를 이해할수 없었다. 첫주에는 룸메이트가 나를 데리고 자주 나갔다. 친구들을 소개시켜주고, 파티에 데려갔는데, 나는 이게 뭔지도 모르겠고 뭔가 심장이 뛰고 좋은거 같으면서도 술을먹으면 어지럽고 몸을 컨트롤 할수 없는게 뭔가 불편했다. 그래서 항상 혼자서 다시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룸메이트는 그런 내가 찌질해 보였는지 그 다음주부터는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 그 후로 룸메이트와 나의 관계는 그냥 불편하게 같이 사는 사람이 되었고, 내가 공부하거나 자고 있을테면, 밤늦게 술을 퍼먹고 들어와서는 한두시간 소리지르다 자는 사람이 되었다. 룸메이트는 그런 삶이 적성에 맞았는지 매주 목금토를 그렇게 나가서 술을 마셨고, 뭐 어찌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잘 살고 있을거라 믿는다.  룸메이트에 대해서 한가지만 더 얘기하자면, 술만 먹으면 우리방을 화장실이라 생각하는(!) 고약한 술버릇이 있었다. 나의 침대는 2층 침대처럼 밑에 공간이 있었는데, 내가 머리를 놓는 곳 아래에 우리방 쓰레기통이 있었다. 이 아름다운 개인은 술먹고 자다가 항상 그 쓰레기통에 볼일을 보았다. 자다가 어디서 청량한 낙수소리가 들려 일어나보면, 룸메이트의 세상 편하게 나의 코앞에서 방뇨하는 얼굴을 보았고, 이걸 뭐라해야하나 생각하면서도 뭐라하면 다큰 어른의 쓰레기통 방뇨에 대해 어떻게 논의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항상 자는 척을 했다. 

 

뭐어쨋던 첫주 후 나는 파티가 나의 적성에 안맞는 다는걸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굉장한 축복인듯 하다. 대학에 와서 자유로운 이성교제와 술마시는 문화에 빠져 많은 것들을 놓치는 사람들이 많다. 마약말고는 (듣기로는) 합법적으로 가장 자극적인 경험이라고 들었다. 그렇게 큰 생각없이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취해 주말마다 의식처럼 술을 마시고, 다음날 늦게 일어나고, 해장하며 밍기적 거리다가, 주말을 보낸다. 

'유학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움  (0) 2019.08.31
커뮤니티 컬리지  (0) 2019.08.31
틴더  (0) 2019.08.31
운동  (0) 2019.08.27
미국 부패  (0) 2019.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