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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활

운동

운동은 나의 삶의 큰 부분이 아니였다. 딱히 할 필요성도 못느꼈고 잘하는것도 아니여서 어렸을때 아버지의 강요에 수영을 하던것 말고는 크게 운동을 한적이 없었다. 중학교때도 축구대신 유희왕 카드를 했다. 그러다가 유학을 와서 체육수업에 성적이 매겨진다는것을 알았다. 한국의 체육시간은 기준도 낮고 대충하면 성적이 나오지만, 미국의 체육수업은 굉장히 체계적이고, 점수가 매겨지고, 그것에따라 차갑게 성적이 나오는 그런 엄격한 시스템이였다.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고, 목적의식없는 고등학생처럼 열심히 땀흘리며 뛰는 아이들을 비웃으며 체육시간에 빈둥거렸다. 당연히 체육성적이 낮았고, 난 그게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정신승리를 하며 체육시간에 빈둥거리고 있던 고등학교 3학년 어느날, 턱걸이를 (대충 하는척하다 못한다고 하려고) 하러 봉을 잡았는데, 내가 못하고 그냥 메달려 있자 나름 친구라고 생각했던 한 학우가 나를 밀치며 `고 백투 차이나’ 라고 했다. 인종차별에 굉장히 관대한 우리 학교 분위기상 선생을 포함한 모두가 그냥 웃어 넘겼고, 나는 체육관 마루바닥에 앉아 설명할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가장 먼저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이때쯤에는 나는 눈물을 참는데에는 굉장한 실력자가 되어있었다. 겁이 많기때문에, 그리고 경험이 없기때문에 그 친구를 때린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나름 학교에서는 친구도 많았고 두루두루 잘 지내는 나였지만, 그때에는 정말 세상에 나 혼자밖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에 친구들은 그냥 아무일 없다는 듯이 나랑 잘 지냈다. 정말 가해자는 다음날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피해자는 이렇게 나이먹고 책에 쓸만큼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마루바닥에 앉아서 내 삶을 돌이켰다. 무슨 갑자기 주마등도 아니고 삶을 돌이켰다니 라고 생각할수 있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항상 뭔가 무시받는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딱히 생각을 안했던것 같다. 어렸을때 항상 겸손함을 강조받고 노자의 `물처럼 살아라’ 라는 말을 명심하고 있었기에 나는 물 흐르듯 좋게좋게 친구들이랑 지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난 딱히 잘하는게 있거나, 딱히 사람들이 나를 존경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며 순간 속상했다. 나는 내가 겸손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내세울게 없는 것이였다. 겸손은 강한사람만이 할수 있는 것이였다 - 다른 사람들이 다 아는 그런 강함을 지닌 사람이, 남들이 다 알기에 굳이 자기입으로 말하지 않는, 그런 역학이였다. 굉장히 속된말로, 정신승리하는 좆밥이였다. 

그날 이후로 난 운동을 했다. 솔직히 말해 목적은 좆밥처럼 안보이는 것이였다. 청소년시절을 겪은 누구나 알겠지만 고등학교는 정글이다. 비록 부모의 사회적 지휘나 재력이 큰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남자의 서열을 크게 힘으로 결정된다. 난 그 힘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겁이많아  옥th상으로 따라와 라고는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되지 않게 힘을 기르는게 나의 목적이였다. 뭘 할지 몰라서 닥치는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중 다행인건 제일 친한 친구의 형이 격투기 선수(!)였는데, 그 덕에 격투기를 배울수 있었다. 모든 고등학생들처럼 폭력과 하이퍼-매스큘리니티 (지나친 남성성?)에 매료되었던 나는 격투기를 계속 배우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은 다음날 잠에서 일어났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그냥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주말이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였다. 젊은이의 객기는 이런 무서운 상황을 멋있는 운동인(?!)의 영광의 상처라고 인식을 했고,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날때마다 친구랑 주짓수 연습을 했고 (맨날 졌다), 나중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학교 앞 와이엠씨에이에 굉장히 작은 웨이트짐이 있어서, 우리는 거기서 뭘 하는지도 모른채 쇠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정확한 내용도 모르고 역학도 모르지만 젊은이의 열정(?!)에 몸은 나름 좋아졌고, 힘도 세졌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게 재밌었다. 매일 아침 일어났을때 오늘이 어제와 같을거란 무기력함이 있었지만, 이제는 어제와 다른 오늘 (어제는 가슴, 오늘은 등)을 맞이함에, 회복한 근육을 다시 조질(?)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렇게 모든 일에 무기력하고 대충하던 나는 운동을 통해서 뭔가를 잘하고 열심히 하는 즐거움을 알았다. 비록 운동은 힘들었지만 정직하게 결과가 나왔고, 나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힘이 들어가는 근육을 느끼는 재미는 말로 설명할수가 없다. 그렇게 운동을 하다보니 체육 성적도 자연스럽게 올라갔고, 졸업하기 전에는 전체 점수 일등을 했다. 이렇게 몸을 기계처럼 만드는게 너무 재밌었다. 

운동의 큰 장점은 두개라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삶의 고정된 루틴과 철학이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운동을 꾸준히 하면, 뭐라도 꾸준히 한다는 개념이 있기때문에 크게 어긋나지(?) 못하는 것 같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면과 영양이 충분히 따라줘야 하고, 술 담배는 몸을 만드는데 치명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한게 아까워서라도 그런 행위들을 자제하게 되는 것 같다.

두번째는 바보같이 굴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뭔 소리냐 싶겠지만, 위에 말했던 것 처럼 세상은 참 엿같기 때문에 겸손은 강한 사람만 할수 있는 것이다. 정치 외교학적으로 봐도 핵무기나 강한 군사력이 있는 나라는 꼭 그런 무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다른 국가들이 알아서 존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핵무기는 군사적 도구라기보다는 정치적 도구라고 생각을 하는데, 어쨋든 사람들이 봤을때 뭔가 좀 세보이면 크게 무시를 하지 않는다. 굉장히 속물적인 말이고 질이 낮다 생각할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그렇다 - 최소한 내가 경험한 바로는, 상냥하고 겸손하'기만’ 한사람들은 이용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더라. 이상적으로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이겠지만, 최소한 나의 주변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 상냥하고 겸손한 사람이 건물주라면? 추성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거다. 이게 참 엿같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는데, 결국에는 가용한 힘 (원시적인 무력, 현대적인 재력)이 있어야 존중을 얻을수 있는 듯 하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운동을 시작하고, 훨씬 내 자신이 편해진 것 같다. 예전에는 뭔가 조금이라도 쎄보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쓸데없이 침을 뱉기도 하고, 불필요한 욕설도 하고, 괜히 좀 불량한 오오라를 뿜어냈지만, 운동을 하고 나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훨씬 더 존중을 받게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삶을 경험하면서 눈치라는게 엄청 늘었는데, 눈치중에서도 ‘찐' 이랑 ‘허세'를 구별할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딱봐도 이사람은 허세다' 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고,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이 든다. 어쨋든 운동을 하고 나서부터는 많은 사람들에게 바보처럼 굴수 있다. 사실 굉장히 거만한 얘기지만, 내가 우스꽝스러운 일을 하고 광대같이 굴어도, ‘이 새끼한테 맞으면 아프겠지’ 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한테는 그렇게 쉽게 무시할수가 없다. 이건 참 원시적이고 쪼다같은 남자의 본능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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