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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운동은 나의 삶의 큰 부분이 아니였다. 딱히 할 필요성도 못느꼈고 잘하는것도 아니여서 어렸을때 아버지의 강요에 수영을 하던것 말고는 크게 운동을 한적이 없었다. 중학교때도 축구대신 유희왕 카드를 했다. 그러다가 유학을 와서 체육수업에 성적이 매겨진다는것을 알았다. 한국의 체육시간은 기준도 낮고 대충하면 성적이 나오지만, 미국의 체육수업은 굉장히 체계적이고, 점수가 매겨지고, 그것에따라 차갑게 성적이 나오는 그런 엄격한 시스템이였다.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고, 목적의식없는 고등학생처럼 열심히 땀흘리며 뛰는 아이들을 비웃으며 체육시간에 빈둥거렸다. 당연히 체육성적이 낮았고, 난 그게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정신승리를 하며 체육시간에 빈둥거리고 있던 고등학교 3학년 어느날, 턱걸이를 (대충 하..
Grandmother I bought my grandmother a set of watercolor painting tools. My mother’s mother lives alone. Her days consist mostly of doing housework, watching the television, and occasionally going out to see her friends. Her spacious apartment is carefully decorated with ornate plates, elegant furniture and smells of fresh hand-brewed coffee. Her bedroom is a room with a bed, and a television almost as big a..
Holiday If we think of holidays, we tend to envision warm beaches far away or urban skyscrapers with expensive restaurants, where we stay at hotels and eat in restaurants, where freshly cooked meals are served by people whose job is to smile at you. After a day of being serviced here and there, we return to our hotel room, which is cleaned and organized. We feel respected, there are people serving us. I..
Group Projects - the Archetypal Journey We are taught, from an early age, that teamwork is essential. From a young age, we are trained to ‘do well in teams’ and ‘cooperate with friends’. Naive young children, whose simple life allows the luxury of altruism, do this rather effortlessly, and play well with others, and help each other to achieve common goals. Adults, on the other spectrum, have no choice but to cooperate and work in the ..
미국 부패 미국은 투명하게 `부패’ 한 것 같다. 이 `부패’ 라는 개념이 사람마다, 문화마다 다르기에 쿼테이션 마크를 붙혔다. 우리는 대게 자본주의적인것에 대해 쉬쉬하고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국은 그런 자본주의적임을 당당하게 내세우며 그것이 편의임을 주장한다. 최소한 내가 느낀 바로는 미국에서 끈 없이 유학생이 잡을 찾기란 꽤 어렵다. 주로 대학에는 회사에서 리쿠르팅 사람들이 오는데, 이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해야지 합격할 확률이 있는것 같다. 난 항상 네트워킹이라는게 어렵게 느껴지고 부패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미국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기술처럼 여겨졌다. 대학을 가서 학년이 늘때마다 불안한 마음으로 잡서치 강의 (가끔 대학 커리어 센터에서 한다)를 들었는데, 강의는 항상 네트워크를 중요시했다. 난 항상 ..
한인커뮤니티 유학생활이나 미국 생활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주로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거기 한국사람/식당/음식/마트 많아?’ 라는 질문이다. 묘하게도 우리는 한국적인걸 끊임없이 갈망한다. 유럽여행을 갈때 컵라면을 싸가는 우리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였다. 나는 상대적으로 어렸을때부터 미국에 와서 나름 적응을 잘 했다고 생각하지만, 피는 속일수 없는 것이였다. 매일같이 햄버거를 먹거나 파스타를 먹을때면, 매콤한 부대찌게나 떡볶이가 그리웠다. 일리노이 대학교는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은 미국 대학교중 하나라고 알고있다. 그에 맞게 한국식당 / 모임등이 굉장히 잘 되어있다. 일리노이 어바나 샴페인 캠퍼스는 질리지않게 다양한 한국 음식을 먹을수 있고, 캠퍼스 안에 한국 식료품과 분식을 파는 마트가 두개나 있으며, 가장 큰..
이(니)미그레이션 미국은 정말 복잡한 나라다. 외국인으로써 살기에 생각보다 답답하고 각박한 세상이다. 우리가 알기에는 melting pot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로 알고 있지만, 좀 더 정확한 비유는 샐러드라고 생각 한다. 미국은 인종과 문화들이 공존하지만, 편의상 나눠진 채로 존재한다. 최근에 부상하는 극우 세력과 전통적으로(?!) 인종차별주의 사상을 가진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우리는 같이 섞여살아야해, 다름은 좋은거야’ 라고 생각을 하지만, `꼭 억지로 섞일 필요는 없어, 네가 김치를 먹든, 히잡을 쓰던 나는 상관 안할게, 너도 내가 뭘 하던 상관하지마’, 같은 개인적인 사상이 바탕이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타문화를 경험하려 하지 않지만, `난 다문화적인, 열린 사람이야’ 라고 느끼는걸 즐기는 것..
미국대학 입학척도 학생이 미국 고등학교 접근하는 이상적인 태도는 코스코 시식코너와 같아야 한다 생각한다. 충분한 역량을 가진 고등학교라면 (나의 고등학교는 그러지 못했다) 학생들에게 여러가지 기회를 제공하고, 여러가지 방향을 맛볼수 있게한다. 그중 학생이 마음에 드는 방향을 찾으면, 그 방향으로 대학을 가서, 그 분야를 깊게 파는게, 이상적인 고등교육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들이 보는 고등학생의 두가지 척도는: 1. 부지런하고 착하고 공부를 할 역량이 있는 아이인가 전반적인 공부 (수학, 영어, 과학, 기타 등)을 해낼수 있고 성적을 유지할 만큼 성실한가 한가지일을 깊게 할수 있는가 (과외활동, 스포츠 등) 2.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머리에 생각이랑 방향이 있는 아이인가 에세이를 통해 본인이 경험한..
대학선택, 방향 사람에게 방향이란 참 중요한 것인 것 같다. 아무리 속력이 좋아도, 좋은 방향이 아니면 좋은 결과를 이루기 어렵다. 조기 유학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이 이 방향의 부재였다. 나의 아버지는 끊임없이 나에게 방향에 대해 질문을 하고, 내가 좋은 답을 찾길 원하셨다. 그럴때마다 나는 귀찮아서 대충 그럴 듯한 열변을 토했고 아버지는 나를 믿으셨다 (미안해요 파더..!). 생각해보면 얼버무리는 능력(소위 말해 아가리털기)은 항상 뛰어났다..! 정말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청소년기때의 방향은 모든 걸 결정하는 것 같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중세시대의 귀족이 아니기 때문에, 이걸 했다 저걸 했다 할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일찍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 분야를 집중 탐구하는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
005. 여름과 아이덴티티 통상적으로 여름에 3개월, 겨울에 1개월 정도 방학을 했다. 방학때마다 난 한국에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방학이 정말 중요한 순간인 듯 하다. 미국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뭔가에 특출난 사람인지, 를 중점적으로 보는 듯 하다. 학기 도중에는 해봐야 방과후 스포츠나, 음악 같은 것들을 한다면, 방학중에는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할수 있었다. 농장에서 일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여름 캠프를 가서 초등생의 상담사를 하는 친구도 있었고, 집에서 책을쓰는 (!) 친구도 있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미국은 본업을 아이덴티티로 삼는 걸 딱히 여기는, 그런 생산적 문화가 있는 것 같다. 미국 학생들은 본인에 대해 설명하라고 하면 주로 본인의 취미..
004. 기독교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는 기독교 학교였다. 난 불교 유치원을 나왔고, 반야심경을 다 외었다. 유치원 이후로 크게 절을 다니거나 하진 않았지만 불교적 철학 (!) 을 고수하고 있었고, 미국 유학을 와서 처음 경험한 기독교는 (마을 전체가 기독교 였다. 미국 내에서 교회 밀도가 제일 높다고 들었다.) 충격이였다. 매번 기도를 하며, 금지된 단어들 (oh my god(!), damn, Jesus Christ 등)도 많았고, 선생님들 조차 술을 마시지 않았다. 매 끼니 전에 기도를 했고, 매 학기마다 성경공부 수업이 있었고, 매주 화요일 목요일은 외부에서 사람이 와서 선교 여행에 대해 얘기하고, 본인이 어떻게 속세(?)로 부터 주님으로 회귀 했는지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학교 합창단에서 부르는 곡도 모두 찬송가..
인종차별 지금도 많이 생각하는 주제지만 인종 차별은 멀리 있지 않다.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고 생각한다, 다만 노출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쓸데없이 복잡한 비유를 하자면 마치 머신러닝 알고리즘과 비슷하다고 볼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데이터에 노출되지 못한 알고리즘은 그만큼 제한된 모델링을 할수 밖에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데이터에 노출되고, 어떤 경험을 하고, 본인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중 고등학교때 만난, 그리고 지금도 가끔 만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다양함이나 다문화에 대한 교육을 받은적도 없고, 그런 데이터에 노출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순수하게 모르는 것 뿐이다...
003.부모님이 떠났다 시애틀에 도착해 나의 집이 될 한인 기도원(?) 같은 곳에 짐을 풀었다. 우리 가족은 종교가 없지만 유학원에서 소개를 해준 분들이기때문에, 그리고 미국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이 방법 밖에 없었다. (미국 학교들은 주로 미성년자 (만 18세미만) 유학생들에게는 부모가 아닌 근처에 거주하는 가디언을 필요로 한다. 보딩스쿨의 경우는 없을수도 있겠다.) 이 기도원의 전도사님 내외가 나의 가디언이였다. 그분들은 나보고 형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다. 여태껏 내 삶의 기독교 경험이라고는 한번밖에 없었다. 초등학교때 혼자 집에 있었는데, 교회 사람이 초인종을 눌렀다. 모두가 아는 교회사람의 특유한 능청스러움으로 그 사람은 나의 꿈을 물어 보았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분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내가 대통령이 되..
002.배경 1993년 2월 25일에 태어나, 큰 탈도 성공도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별한게 있다면 태권도를 한적이 없는 정도?로 정말 무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2001년쯤 아버지의 안식년에 (교수이시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일년을 보냈다. 거기서 영어를 배웠고 그 이후로 쭉 남들보다 영어 하나는 잘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도 초등학교에서 특별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어선생님이 보이스카웃을 맡고 계셔서, 그리고 나를 이상하게 아끼셔서, 보이스카웃 학교 대표가 되었다. 그때 하신 말씀이 왜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 라고 하셨다. 초등학교때의 별 기억은 없다. 무난하게 학교를 다니면서 엇나가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시절을 보냈다. 친구랑 왕뚜껑..
001.첫 출발 - 14세 (2007) 공항의 모든것은 차가웠다. 기내식도, 좌석들도, 사람들도. 내가 여기 잠깐 머무는지 아는 걸까. 이별에 익숙한 것들은 차가웠다. 아직 난 그런 개념들이 너무 낯설었다. 공항에서 비행기, 공항에서 비행기를 지나며, 어두운 비행기안 다닥다닥 붙어앉아 잠이 들었다 깨었다, 시간이 언제인지도 모른채 승무원이 주는 밥을 꾸역꾸역 챙겨먹으며,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모호해질때쯤, 안전벨트불이 꺼지고 화살표를 따라 터벅 터벅 걷다보면 어느새 또 긴 줄. 그 줄의 끝에는 나를 내려다보는 유니폼 입은 남자가 있었다. 왜 이곳에 왔느냐 묻지만 난 답할수 없었다. 한국에서 공부를 잘 못해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찾고 싶다. 난 사실 지금 너무 두렵고 혼란스럽다 등의 거창한 말은 생각도 나질 않..
000.Preface 책을 쓴다는 건 여간 거만한 일이 아닐수 없다. 자서전을 쓴 사람들을 보면, 애초부터 그 생각이, 내 자신이 이렇게 할 얘기가 중요하고, 위대하다는 전재 하에 자서전이 적힌 듯 하다. 난 딱히 그렇지 않다. 27세에 난 부득이 하게도 (트럼프 정권) 내 인생을 정리할 기회가 생겼고, 그 기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조기 유학이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물론 배부른 소리다.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갈 정도로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걸 안다. 또한 돈도 많은게 징징댄다 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고 생각한다. 하소연 하거나 ‘난 이렇게 어렵게 살았지만 성공했다’ 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뜻은 없다. 어찌보면 난 프리미엄 로드를 탔다. 난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입시에 시달려 열심히 하신 분들 보다는 다소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