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학생활

001.첫 출발 - 14세 (2007)

 

항의 모든것은 차가웠다. 기내식도, 좌석들도, 사람들도. 내가 여기 잠깐 머무는지 아는 걸까. 이별에 익숙한 것들은 차가웠다. 아직 난 그런 개념들이 너무 낯설었다.

공항에서 비행기, 공항에서 비행기를 지나며, 어두운 비행기안 다닥다닥 붙어앉아 잠이 들었다 깨었다, 시간이 언제인지도 모른채 승무원이 주는 밥을 꾸역꾸역 챙겨먹으며,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모호해질때쯤, 안전벨트불이 꺼지고  화살표를 따라 터벅 터벅 걷다보면 어느새 또 긴 줄. 그 줄의 끝에는 나를 내려다보는 유니폼 입은 남자가 있었다. 왜 이곳에 왔느냐 묻지만 난 답할수 없었다. 한국에서 공부를 잘 못해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찾고 싶다. 난 사실 지금 너무 두렵고 혼란스럽다 등의 거창한 말은 생각도 나질 않는다. 다만 부모님이 시킨대로 웃고 `스터디’, 라는 짧은 답을 하니 통과가 되었다. 

가방을 찾는 곳 위에 큰 비행기가 걸려있다. 드디어 문이 보인다. 2007년 1월 5일, 새벽 7시, 아니 한국은 밤. 이때부터 나에게 시간은, 공간은, 집.이라는 개념은 온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가 밖에 담배를 피러 나가셨다. 나도 답답해 따라 나섰다. 밖 공기가 차가웠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담배연기는 짙게, 더 무겁게 흩날렸다. 이때부터였을까, 아버지가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게, 항상 완벽하고, 강하고, 무서운 존재가 아닌,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유학을 떠나리라 마음을 왜 먹었을까. 지금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단지 한국에서 그닥 대단한 학생은 아니였다. 공부를 엄청 잘한 것도, 못한것도 아니였고, 사고를 치거나, 엇나가는 학생도 아니였다. 그닥 지극히 평범한, 왠지 갑자기 사라져도 별 이상이 없을, 그런 학생 이였다. 아버지는 엄격하신 분이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교 100등 밖은 사람으로 취급을 하지 않았고, 본인 아들이기에, 잘되길 바랬기에 더욱 더 화를 내셨다. 그러다 얘기가 나와, 순식간에 나는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재수없겠지만 우리집은 엄청 부유하진 못해, 동부의 사립학교 대신 서부의 촌 기독교 학교를 가게 되었다. 

난 그때 별 생각이 없었다. 단지 아버지가 영상통화를 위해 사주신 노트북으로 어떤 게임을 할지, 어떤 만화를 볼지, 그런 생각 뿐이였다. 나만의 자유가, 공간이, 삶이, 너무나도 흥분되는, 그런 14살 남자아이였다. 

허나 그 혼란속에, 그 흥분속에, 사방에서 괴리감을 주는 그 차가운 겨울바람에, 아버지의 담배연기를 보고, 내 노트북 가방을 보고, 난 머리가 아팠다. 그때가 처음이였다. 다가올 이별을 인지한게. 난 어쩔줄 몰랐다. 생각도 해보지 못한 개념이였다. 이별은. 너무나도 생소하고 낯선 일이라.

 

'유학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005. 여름과 아이덴티티  (0) 2019.08.26
004. 기독교  (0) 2019.08.26
003.부모님이 떠났다  (0) 2019.08.26
002.배경  (0) 2019.08.26
000.Preface  (0) 2019.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