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학생활

005. 여름과 아이덴티티

통상적으로 여름에 3개월, 겨울에 1개월 정도 방학을 했다. 방학때마다 난 한국에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방학이 정말 중요한 순간인 듯 하다. 미국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뭔가에 특출난 사람인지, 를 중점적으로 보는 듯 하다. 학기 도중에는 해봐야 방과후 스포츠나, 음악 같은 것들을 한다면, 방학중에는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할수 있었다. 농장에서 일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여름 캠프를 가서 초등생의 상담사를 하는 친구도 있었고, 집에서 책을쓰는 (!) 친구도 있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미국은 본업을 아이덴티티로 삼는 걸 딱히 여기는, 그런 생산적 문화가 있는 것 같다. 미국 학생들은 본인에 대해 설명하라고 하면 주로 본인의 취미, 특기등을 얘기한다.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을 중요시한다. 물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모든 미국 학생들이 생산적인 일을 하지는 않는다. 매일 게임에 빠지는 학생도 있고, 술담배 마약에 빠진 학생들도 있다. 

한국에 있는 영어 학원에서 일을 했을때, 한국 학생들에게 how are you 라고 물으면 항상 tired 라고 대답했고, 어제, 주말 에 뭐했니? 라고 물으면 study 라고 영혼없는 눈을 하며 하나같이 답했다. 이 친구들에게 학생이라는건 본인들의 아이덴티티 전부였다. 그 공부라는 업무 외에는 무엇이 존재하는지 생각을 한 적도 없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다가 대학을 가게 되어 (아니면 조기 유학을 가게되어) 그런 일차원적 아이덴티티를 강압하는 환경에서 벗어나면, 그 공백에 대해 많이 당황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그 공백에 대한 좋은 대안을 찾지 못하면, 또한 찾는 방법을 모르면, 그 학생은 방황하게 되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극 으로 그 공백을 매우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운이 나쁘면 그게 마약이나 술 담배가 될수도 있지만, 주로 게임에 많이 빠지는 듯 하다. 가장 리스크가 적은 자극이고, 항상 가용할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혼자가 되었을때 미친듯이 게임을 하고 만화를 보는 것 처럼, 중고등학생의 체력은 넘쳐나고, 혼자서 생산적인 일을 찾는 능력은 많이 낮다. 그렇기 때문에 일차적인, 수동적인 아이덴티티에 억눌려져 있던 자아가 깨어나면, 그리고 그 상태에서 올바른 지도를 받지 못하면, 방황하고, 본인에게 가장 원시적인, 빠른 자극과 쾌락을 줄수 있는 매체로 빠지게 되는 듯 하다. 그런 생산적인 배출구를 찾지 못하는 (또한 옆에서 누가 지도해주지 못한다면) 친구들은, 주로 나쁜쪽으로 빠졌다. 유학생, 특히 조기유학생들이 큰 위험에 쳐해있는것도 그 이유다. 난 지금도 아버지가 현명했다고 생각하는게 (그때는 아니였지만), 한달 용돈이 20불(!)이였다. 한달에 20불을 쓰려면 가끔 주유소에서 음료랑 과자를 사먹는정도 가된다. 만약 내가 그때 돈이 더 많았더라면 아마 더 나쁜짓을 했을것이다. 한번은 내가 치아교정을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삥땅( 아버지 죄송합니다)을 친적이 있었는데, 그 돈으로 아이폰을 사려다 이베이에서 사기를 당했다.  확실히 애들은 돈이 생기면 멍청한 짓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어쨋든 난 한국에 가서 SAT 학원을 다녔다. SAT학원을 다니기 위해서 부산에 사는 가족들을 떠나 분당에 있는 이모집에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게 뭔 난리인가 싶다). 매일 아침 땀을 뻘뻘 흘린채로 강남으로 지하철을 타고, 단어를 외우면서, 에어컨이 나오는 학원에서 8시간 가량 SAT 시험을 공부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행위라고 생각을 한다. SAT는 한국의 수능처럼 공부한다고 점수를 크게 향상시키는 그런 시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영어를 잘 하고, 빨리 읽고 내용을 캐치하는지, 그런 감각이 중요하지, 명문(이라기에는 다소 애매한) 대학교에 붙은 학부생이 백날 설명해 봤자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SAT 학원을 처음 다닐때는 엄청난 점수 향상이 있었다. 처음 본 문제 유형들이 익숙해지고, 장시간 앉아서 그런 문제들을 풀어가는게 몸에 익숙해지면, 점수는 급격히 올랐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얼마나 센스가 있는지, 글을 얼마나 잘 읽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백날 앉아서 해봤자 큰 득을 보지 못한다.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가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면, 아마 SAT 학원을 다니지 않을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갈수 있다면 SAT학원을 한달 다니고 (한달이면 거의 오를점수는 다 오르는 것 같다), 차라리 자기 하고싶은일을 하고싶다. 지금처럼 글을 더 쓰던지, 음악을 더 배우거나, 일을 하거나, 코딩을 배웠을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SAT학원을 3개월 이상 다니는 것은 큰 낭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님들도 마찬가지고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뭐라도 해보자는 식으로 SAT학원을 다니게 한다. 마치 오래된 관습처럼. 한국에서는 부모님들이 학생본인보다 전문가를 더 믿는 경향이 있는듯 하다. `좋은' 대학들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고, 그 학교들의 입학전형이나 전략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가장 안전하고 보편적인 방법을 택하는 듯 하다. 하지만 미국은 (나중에도 얘기할 계획이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은 나름 덕후(?) 들을 좋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조금 전체적으로 부족하고 이상하더라도,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길러온 분야가 있으면, 그 점을 높게 평가하는 듯 하다. 한국은 만약 둥근 (여러 방면에서 잘 하고 모난 곳 없이 두루두루 잘 하는 사람)학생을 원한다면, 미국은 네모난 (몇가지 분야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을 원하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네모난 사람들이 모일수 있게 학교내 그룹도 많고, 지원도 많이 해주는 편인듯 하다.

어쨋든 내 얘기로 돌아가서, 많은 고등학생들 처럼, 난 하고 싶거나 뭔가 열정적으로 쫒고 있는게 없었다. 다만 수동적으로 흘러 가는것에 너무 익숙해져 그 흐름에 벗어나는 모든 일들은 비행이라고 생각 했다. 이 점이 후회라면 나름 후회인데, 게임으로 낭비했던 시간으로 만약 다른 생산적인 취미를 찾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환경이 크게 좋지 않았다. 홈스테이들은 내가 방과후 활동을 하는것을 귀찮아 했고, 마치 나를 데리러 오는게 큰 일이고 내가 많이 감사해야하는 일처럼 대했다. 홈스테이 사람들은 그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아니였다. 학교 내의 학외 활동도 많이 없었다. 학교가 워낙 작아서 특별한 배움을 위한 자극이 부족한 환경이였다.** 우리학교는 세상을 바꿀 인재를, 화성을 개척할 엔지니어 따위를 양성하는 곳보다는, 주님의 충실한 하인으로 행복하게 살고 교회에 꾸준히 나오는 신도를 기기르는 곳이였다. 

**학교를 선택하는 면에 있어서도, 비록 작은 학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긴 하지만, 그만큼 시설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들어 방과후/클럽 활동이 많이 없다던가, AP(대학수업) 수업이 별로 없다던가 하는 큰 단점이 있다. 

 

'유학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대학 입학척도  (0) 2019.08.26
대학선택, 방향  (0) 2019.08.26
004. 기독교  (0) 2019.08.26
003.부모님이 떠났다  (0) 2019.08.26
002.배경  (0) 2019.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