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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1)

이번에 영화화가 되어 큰 관심을 받고 있는 82년생 김지영이다. 미국 시골에 있는 관계로 영화는 아직 못봤다. 하지만 한참전에 책을 읽었기에 기억을 되살리며 글을 써본다. 이 책의 리뷰중 감명깊었던 리뷰가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82년생 김지영, 이 책의 위대함은 모든 내용이 너무나도 예측가능한 것이다'. 같은 내용이였다. 나도 책을 읽으며 (한번만에 다 읽었다 - 굉장히 쉽게 읽히는 책이다) 모든 이후의 내용들이 예측이 가능했다. 예측이 가능했기에, 너무나도 명백히 우리가 아는 (알지만 외면하려는 사람들도 있는 듯 하다) 내용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듯 하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나의 어머니인 박지영 여사 (공교롭게도 같은 이름이다)와 깊은 대화를 나눴는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박지영 여사도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반응했다.  난 궁금했다. 왜 모두가 예측하기 쉬운, 뻔한 이야기가, 왜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공유하는 이야기가 비극인지.

난 솔직히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며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성인이면 분명 주위에서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을 만나 봤을 텐데, 왜 그들의 고민을 반란으로 치부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생각을 해봤다.

군대에 있을적 얘기다. 아니 이런 한남새끼가 김지영에 대해 쓴다고 함정을 파고 세번째 문단부터 군대 얘기구나, 싶겠지만,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나는 2012년 10월에 입대해 2014년 7월에 재대를 했다. 부대마다 다르겠지만, 전방부대였던 우리부대는 그때 당시 굉장한 선진병영으로의 과도기를 겪고 있었다. 또한 우리가 일병쯤 될때 동기 한명이 탈영을 해주는(?!) 바람에 선진병영생활 및 악폐습의 철폐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런 과도기에 휩쓸려 나의 군번은 ``내가 한만큼 못받는'' 군번이 되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내가 이등병으로 전입왔을때는 (..``라떼는 말이야''), 내가 빨래는 물론, 선임들 침구류까지 개야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구조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가 가장 많은 일을 해야했다. 많은 것들을 알고 경험이 있는 선임들은 가만히 있따가, 막내가 일을 못하면 혼을 냈다. 존나 이상하고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내가 이등병때는 그게 당연한 일이였고, 그게 모두의 현실이였고, 이등병은 어리버리하고 혼나고 아무것도 할줄 모르지만 모든걸 해야하는, 그런 존재였다. 이 통상적 관념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 내가 그랬다 - 일명 ``폐급'' 이라는 극단적인 불명예를 안게 된다. 내가 상병쯤 되었을때는 군대가 많이 좋아져 (=상식화 되어) 각자 빨래를 각자 하고, 각자 침구류 정리를 하고, 선임이 후임의 침대에 못 앉게 되었다. 동기들끼리 모여서 얘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억울함을 표하고, 우리는 다 했는데 왜 우리는 누리지 못하는가, 부터 시작해서, 요즘 애들 완전 군대 거꾸로다, 라는 필살꼰대의 면모까지 보였었다. 우리가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부당한 것들이 보인다. 하지만 많은 사회적 다이내믹이 그렇듯 오랫동안 고여져있는 악폐습의 피해자들은 주로 힘과 목소리가 없는 계층들이고, 그런 제도등으로 이득을 취하는 계층은 기득권이기 때문에,  그런 악폐습이 계속 되어진 것이다. 이등병때 나는 나를 시발놈이라고 부르는선임의 국방색 삼각 팬티를 개는 그런 엿같은 일을 겪으면서, 나는 내가 병장이 되면 절대 이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 하지만 짬이 차고, 권력이 많이 생길수록, 그런 부당한 제도들이 나를 비껴가게 되었고, 나는 그런 제도들로 인해 이득을 보는 계층이 되었다. 그렇게 되자 나는 이등병때 나의 분노와 고충은 싹 잊은채 후임들이 하는 빨래를 티비보며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이해하기론 굉장히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기서 병장도 같이 빨래를 하는게 맞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그런 이상을 이룰수 있을까. 여기서 내가 일어나서 ''애들아 같이하자'' 라고 할수도 있다 (=개개인의 변화). 가장 이상적인 솔루션이다.하지만 그러는 사람이, 애석하게도, 많지 않기에, ''선임도 같이 빨래를 해라'' 라는 ''병사생활행동강령'' 같은 지침이 내려지고 (=사회적 합의, 기준의 제시), 그런 지침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찔릴수 있다는 위협'' (=사회적 매장의 위협)이나 직접적 징계 (=제도적, 법적 처벌)같은 추가적, 외적 자극이 주어진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면 알겠지만, 기득권이 되어버린 이상 그 권리와 특권들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내가 만약 그런 기득권자들에게 시달렸다면 더더욱 내가 쟁취(?)한 특권들이 애틋하기 마련이다. 이등병때 전입을 오면, 이런 개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등병은 원래 아무것도 못하지만, 죽도록 해야되고, 욕을 많이 먹고 많이 까여야 나중에 좋은 군인이 된다.''  이등병때는 이런 개념이 너무 이해가 안되고 화가 나면서도, 서서히 군대에 동화되어 본인의 현실을 그 사회화 일치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이등병이라는 아이덴티티에 대한 명백한 고정관념과 역할을 나누게 되고, 처음에 들었던 개소리가 진실이 되고, 현실이 된다.  평등한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이런 문화는 이등병은 원래 하위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와 동등해지려고 하는 그들의 노력은 우리에게 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선진병영'' 이라는 개념은 화가 나고 우리는 이게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라는 배경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나도 그렇고, 많은 남자들이 군대얘기를 좋아한다. 만나서도 군대얘기를 하고 군대를 다루는 많은 프로그램도 존재한다. 이전 글에서 적은 것 처럼 남자들이 시도때도 없이 군대 얘기를 하는 이유는 트라우마에 따른 집단적 합리화라고 생각한다. 젊고 미친듯이 활기찬 이십대 초반에 21개월을 갇혀 산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또래 (아니면 나보다 어린)의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명령을 받드는 것은,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생활공간을 24시간 공유하고, 유사시 내 목숨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 고된일이다. 군대의 현실은 이렇지만 이 현실은 이상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는 이랬어, 서로서로 불행배틀을 하며, 우리가 경험한 일이, 청춘의 낭비가 아니고, 슬픈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이라고, 숭고한 일이라고 서로 위로하고 합리화 하는 과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이런 문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은 치료의 중요한 요소중 하나를 '경험의 공유' 라고 생각한다. 알콜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이나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 다독여주고, 서로의 의사가 환자가 된다. 나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나는 혼자가 아니고, 유사한 경험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정신적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무슨 얘기를 하나 싶다. 난 에너지원 ("태양에너지가 짱짱이지" 같은 견음)에 대한 논쟁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논쟁에 중립적으로 위치해 양쪽을 보려고 한다. 내 마음이 한쪽으로 쏠리더라도, 개개인마다 의견이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때문에 최대한 찾아서 읽어보고, 내가 놓치고 있는것은 없는가, 생각해보려 한다. 하지만 이 영화와 소설에 화를 내는 사람들은 이해를 할수가 없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얘기를 들려주는게 그렇게 분개할 일인지. 

감히 나의 의견을 내본다면 한국의 페미니즘은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대학교때 만나던 친구의 영향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여성들의 삶이 나와는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평성 완벽히 이해할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더 이해하고 배우기 위해 강의도 다니고, 사람들과 얘기를 했다. 

나의 부족한 연구결과 네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번째는 굉장히 뻔한 쓸데없이 강직한 유교사상과 그것이 바탕된 교육이다. 이제부터 쓸 내용들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일반적인 일들이라 생각하지만, 한국 남성을 대표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나의 이야기로 적는다. 집안마다 다르겠지만, 어렸을때 부터 난 여자를 멀리하라고 들었다. 굉장히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추석에 모든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마 여자는 요물이다' 라고 외치셨고, 여성분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웃어 넘겼다. 사람은 어느정도 점진적인 노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때 한국에서 여성에 관한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했고 (월경이라는 것에 대해 수업을 2시간 들었지만 오랫동안 정확히 무슨일이 어디서?! 벌어지는지 몰랐다. 피가 난다는 소식을 몇년후에 전해들었을때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여성과 별 교류도 없었다. 주로 그렇게 여성을 미지의 생물체로 판단할때쯤, 나는 야동을 접했고, 월경이 뭔지도 모르는 나는 그렇게 남성중심적으로 만든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성인 엔터테인먼트로 여성을 배우고 있었다. 솔직히 그때는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밖에 생각을 안했던 것 같다, 실제 여성과 대화를 하는 것 보다 야동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았기때문에. 그러다가 운이 좋게 많은 현명한 여성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이해하면서 부터, 외모와 몸매보다, 고민과 그들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가끔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너이새끼 여자 꼬실려고 함정파는거지' 라고 말하는데, 난 솔직히 내가 평생 경험하거나 생각하지 못할 얘기를 듣는게 너무 즐겁고, 세상을 더 알록달록하게 볼수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주위를 둘러보거나 얘기를 해보면, 아직도 여성을 야동이나 드라마로 배우는 사람이 많다. 아직도 벽을 치며 `시발 널 위해서라면 죽을수 있어'라는 게 멋있다거나,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견음(개소리)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에는 데이터 샘플사이즈인듯 하다 (사람의 뇌를 머신러닝 알고리즘으로 본다면). `실제 여성과 얼마나 많은 교류를 했는가' 가 관건인데, 내가 만약 실제 여성을 만난적이 없고, 나의 `여성'에 대한 데이터(경험, 지식)이 오롯히 미디어에서 왔다면, 굉장히 왜곡된 개념을 가질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미디어의 문제도 있다. 지금은 많이 바뀌고 있지만, 몇년전까지만 해도 미디어는 (야동은 아직도 굉장히) 남성주의적이고, 실존하는 여성을 묘사하지 않는다.

-계속